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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파리

카타콤베(Des catacombes) - 창넘어초록의 파리 여행기 Vol.11

 

 

인터넷을 찾다보니 카타콤베가 이색 여행지, 혹은 무서운 여행지로 소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네요. 물론 수십만구의 실제 유골이 전시되어있는 곳이긴 하지만 공포체험이라던가 으스스한 곳이라는 식의 수식어로 이 곳을 소개하는 글은 지양되었으면 합니다. 해골무덤을 어떻게 관광지로 삼을 수 있느냐는 말 까지 있었지만, 이런 표현은 문화와 역사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각설하고 이제 카타콤베를 소개하겠습니다.

 

 

 

 

카타콤베는 카톨릭이 박해를 받던 로마시절의 지하무덤(납골당)이자 제례를 지내던 은신처입니다. 소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서 주로 발견되었습니다. 카타콤은 로마시 주위의 지하무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확장되어 굴과 방으로 이루어진 모든 시설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예로 파리의 카타콤이 원래는 사용하지 않는 채석장이었지만 1787년부터 묘지로 사용했다고 하네요.

 

 

 

 

지하 굴은 매우 복잡하게 되어있고, 이중 1.6km, 40분 가량 소용되는 거리만 개방되어있습니다. 지하로 약 26m정도 내려가고 외길인데다 입구와 출구가 전혀 다른 지역에 있어 방문하실 때 참고하셔야 합니다. 지하에서 완전히 방향을 잃은 채로 다니다가 지상으로 올라오니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더라 구요. 다행히 파리는 버스정류장마다 시내지도가 있어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하로 내려오면 한참 동안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합니다. 어둡고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걸어야 하니 겁이 많으신 분들은 함께 내려온 외국인들이라도 잘 따라다니시면 됩니다. 외길이고 중간중간 관리인들도 있어 전혀 위험하지는 않지만 일행에서 떨어져 혼자 있으니 금방 적막해 지더군요. 이런 와중에도 그래피티를 잊지 않으시는 파리의 스트리트 아티스트들과 그것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는 파리 시의 시설 관리자들의 깨알 같은 예술관을 만나게 되네요.

 

 

 

 

한참 걷다 보니 드디어 무언가 나옵니다. 무슨 건물인지는 도저히 모르겠네요.

 

 

 

 

조금 더 가면 우물 같은 것이 나옵니다. 석공들의 족욕조라고 써있네요. 채석장으로 쓰일 당시 석공들이 씻는 곳인 듯 합니다. 생각해보니 프랑스도 지하수에 석회성분이 있어 우리나라처럼 마실 물이 땅에서 솟아나기는 힘들겠네요;;;

 

 

 

 

그리고 드디어 해골들이 나오네요. 파리의 카타콤베는 비위생적인 레 알 지구의 공동묘지 정비를 위해 계획적으로 만들어 진 곳입니다.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일반적인 정서에 잘 맞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6백만구의 유골이 매장되어있다고 하는데 유골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을 뿐,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 한 이유는 수많은 유골이 굉장히 장식적인 요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유골을 이용해 벽을 만들고 십자가 등의 상징물을 만든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돌아봐도 이 곳은 개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고 보입니다.

 

 

 

 

죽음과 지옥의 흔한 상징으로 대표되는 해골이 즐비해있고, 특정 부위의 뼈들을 이용해 상징적인 장식을 만들어 놓은 것이 흡사 흑마법사들의 비밀은신처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의미로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해골에 문자나 도형 같은 것들이 새겨진 경우가 종종 보이는 것이 특이합니다. 물론 무슨 뜻인지 제가 알 길을 없지만, 이 곳에 쌓인 유골이 그냥 평범한 죽음만 모여있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드네요.

 

 

 

지하 통로를 따라가면 제단이 나옵니다. 초기 카타콤베가 비밀 예배장소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런 해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3세기경 로마에는 약 5만 명 이상의 교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주일마다 집을 나와 비밀리에 카타콤으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카타콤의 구조상 긴 통로와 좁은 방에서는 어떤 종류의 예배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가장 크다고 알려진 성 칼리스투스 카타콤의 교황의 예배실도 약 40명 정도의 사람만 수용하는 정도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예식보다는 죽은자를 기리기 위한 기도공간 정도로 봐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설득력 있는 해석인 듯 합니다.

그리고 파리의 카타콤베는 17세기에 만들어진 만큼 비밀 예배장소가 필요할 이유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카타콤베가 무덤으로써의 기능만 한 것이 아님이 확실합니다. 원래 장식이라는 것은 상징과 의미가 부여된 문화공간에서 발견 되는 것이기도 하고, 무덤은 대게 종교적인 배경이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파리의 카타콤베는 세계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의 본부가 되기도 했다고합니다.

 

 

 

이 곳이 카타콤베의 출구입니다. 밖으로 나오면 그냥 어느 동네의 골목길입니다. 이 곳이 출구이기는 하지만 지하에 묻혀 잊혀져 있던 곳을 다시 발견한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건물 공사를 하던 중 바닥이 함몰되어 바닥공사를 하다가 긴 터널을 발견하게 됐다고 하네요.

출구를 나서기 전에는 혹시 유골을 들고나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하고 소지품 검사를 하니 혹시라도 개인적인 취향으로 하나 들고나오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의도치 않게 신발 밑바닥에 자갈이 낀 채로 나와 들키지 않고 카타콤베의 돌멩이 하나 가지고 와버렸네요.

 

무수히 많은 해골이 즐비해있으니 무서운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찾지 않으시면 좋을 듯 합니다. 카타콤베 입구에도 노약자나 임산부, 심장질환이 있으신 분들은 출입을 삼가라는 경고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찾으시는 분들 중에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분들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동양에 비해 죽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죽음이 삶의 반대편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으로 보는 인생관 때문은 아닐지 추측해봅니다.